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우주를 품은 작은 거인 디자이너 이림(李林)
  • 편집부 / ktnews@ktnews.com
  • 승인 2013.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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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패션거리 조성 ‘원류’ 기여
디자이너는 예술·문화와 친밀해야
디자인기교만 부리는것 생명력없어
아트하우스, 각계각층 리더 명소化

우여곡절 끝에 4년여만에 청담동의 현재사옥인 이림의 아트하우스가 완공됐다. 디자이너 이림의 숙원이 이뤄진 것이다. 세련된 외관은 청담성당과 인근의 풍경과도 잘 어울렸다. 서로 다른듯하면서 닮은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이국적인듯 정겨운 듯 조화를 이뤘다. 이제는 아트하우스에 걸 맞는 패션과 문화를 지향하는 입주 업체를 찾아야 했다. 당시에는 청담동 거리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고 패션거리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아트하우스의 컨셉에 부합하는 입주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림은 부동산 업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소다’의 박근식 대표 등 감각적 브랜드를 지향하는 이들을 찾아나섰다. 그 결과 ‘소다’ ‘밀라노구찌’등 1층에 근사한 구두샵이 자리잡게 됐다. 그 옆에는 이림의 오트쿠튀르샵을 열었고 이층에는 모피와 수입아동복이 들어왔다. 또한 당시 개그맨이었던 주병진씨가 미용실을 열었으며 3층에는 카페가 자리잡았다. 이림은 밤에도 소등하지 않고 불을 환하게 켜두었다. 아직은 패션거리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홍보차원에서 소등을 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지하였다. 문화공간과 갤러리 등 제안도 해 보았지만 쉽게 입주자가 나서지 않았다. 할수 없이 이림은 ‘지하임대’를 써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림의 기도는 언제나 그렇듯 항상 이뤄졌다. 그 유명한 ‘샤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샤또’의 전신은 유엔빌리지 지하의 ‘투모로우’이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클라리넷 명인 이동기 선생을 비롯 유명한 예술가들이 노래하고 연주를 하는 곳이었다. 정형남씨가 사장이었는데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조선호텔 웨이터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조선호텔에서 일하면서 상류층들이 원하는 문화적 욕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정형남 사장은 “건물은 너무 탐이 나지만 돈이 부족하다, 보증금을 조금만 내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이림은 난감했다. 어렵사리 투자를 해 지은 건물이었다. 즉 정형남 사장과는 코드는 맞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로 남았다. 이림은 1주일동안 고민을 한 끝에 “해보고 후회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지하에 자리잡은 ‘샤또’는 상류층들을 상대로 대박을 내는 카페가 됐다. 지하의 인테리어는 어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꾸몄고 연주와 노래를 할 수 있는 공간도 근사하게 조성했다. 그러나 입소문이 나기까지 5개월간은 손님이 없어 불안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6개월에 접어들면서 ‘샤또’는 매일 저녁 난리를 치를 만큼 유명해졌다. 주차요원이 다섯명에다 당시 최고 승용차였던 그랜저가 샤또 입구에서부터 공원까지 들어 찼다.

유명인사와 내로라 하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앞다퉈 찾아들었다. 덕분에 건물도 유명해졌으며 술도 마시지못하는 이림은 유명인사들이 찾는 통에 매일밤 불려나가는 즐겁고도 피곤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는 단지 이림스타일 건물이 유명해 진것이 아니라 이 일대가 주목받으면서 패션과 문화스트리트로 발전을 해 나가는 큰 계기가 됐음을 의미한다.

“선생님 건물이 아니면 감성이 안 일어나요”라고 예술가들은 말하곤 했다. 그러자 맞은편에도 유사한 가게들이 몇 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적인 차이가 심하게 났고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다. 가끔 이동기 선생과 정형남 사장등을 보면서 각 분야의 리더는 아무나 될수 없고 엄청난 노력과 감성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림은 청담동을 ‘문화의 거리’로 승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문화의 거리는 집약적으로 생성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이림은 청담미술제가 시작되면서 본격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이동기 선생을 설득해 연주자 그룹들이 와서 공연을 하도록 노력했다. 청담동 스트리트가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성당앞에 텐트를 치고 연주를 했다. 패션 이전에 문화예술이 먼저 생성되고 그 다음에는 다양한 파생효과가 이뤄질 것이라 확신했다

3년동안을 열심히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연주회를 열었지만 문화적 전통은 뿌리내리지를 못했다. 이림은 “각각 잇속만 챙기려하고 기여를 하지 않으니 청담동 음악제도 사라지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문화를 하나의 요식행위로 알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 이림은 “해외의 유명한 문화, 패션스트리트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라며 “해외유명브랜드들이 들어와 있다고 해서 명품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편협한 주변의 인식에 일침을 가했다.

이림은 말한다. “너무 단순하게 살면 안된다. 씨앗이 날 때 정성들여 긴시간 키울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작은것에 이해관계를 두면 큰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고. “후배들은 모두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이 단순히 ‘디자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함정이다. 문화와 예술을 알지못하면 그 디자인에는 생명력이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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