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섬유신문

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2018년 01월 17일 (수)

데일리뉴스

전체뉴스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

    전체뉴스보기

    [연구논문] 박혜원 <창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 지역문화 콘텐츠 기반사업을 위한 경남지역 의생활 연구

    • ●  1. 연구 목적  ●

      본 연구는 그동안 국내 의생활 변천 연구가 수도권 중심이었던 점에서 탈피해,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의생활 문화의 특성을 종적으로 그 흐름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연구의 시도는 의생활 연구가 다양화 다변화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의 방향의 제시 뿐 아니라, 지방자치 시대의 문화 개발을 위한 경남의 의생활 정보와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지역문화연구는 역사학과 전통 민속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돼 왔으나, 최근 각 지역자치 단체가 앞 다투어 지역의 문화적 사료를 디지털 콘텐츠화 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의생활 분야도 한 시대의 민초들의 삶을 정확히 보여주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연구는 지역마다의 독특한 특성이 표출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경남의 의생활 변화와 그 특성과 상징은 미래의 경남문화 사업의 기반이 될 스토리텔링, 문화상품 개발, 지역 축제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자료로 사용 가능할 것이다. 

      ●  2. 연구방법 및 내용  ●
      연구 방법은 경남의 역사, 전통 민속자료, 복식사와 관련된 문헌을 중심으로 고찰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와 관련해서는 지역의 문화예술관련 인터넷 자료와 개인 소장 사진들을 시각 자료로 활용해 문헌 연구의 한계를 탈피한 실증적 고찰이 되도록 하였다. 연구의 범위는 조선시대부터 1945년 해방 이전까지이다. 조선시대에는 지역의 통과의례를 기준으로 한 의생활 풍습의 특성을 확인하고 경남지역의 민속예능에서 입혀진 의상의 특성을 제시하였다.

      ●  3. 결과 및 고찰  ●

      1) 통과의례로 본 의생활
      아기가 태어나면 ‘배냇저고리(혹은 이란저고리)’를 입힌다. 아기의 연약한 몸에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깃을 달지 않으며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지 않도록 손이 가려지는 긴소매를 달았다. 여름철에는 광목이나 무명을 삶아서 만들었으며 겨울에는 부드러운 ‘전(氈, 융)’으로 만들었다. 하의로는 밑이 터진 풍차바지를 입히기도 했다.

      관례(冠禮)는 남성의 경우 성인이 되려면 상투를 올리고 그 위에 관(冠)을 써야했고 여성의 경우는 혼례(婚禮)를 통해 관례를 대신하게 되었다. 1910년대 까지는 이러한 관례를 치르고 어른이 되는 형식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 혼례(婚禮) 옷의 기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특성과 큰 차이가 없다. 즉, 신부의 경우는 궁중의 예복을, 신랑의 경우는 벼슬을 한 사람의 관복을 평생 한 번 혼례 때 입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부경남의 혼례복의 특징은 사모관대, 원삼, 족두리가 기본이었지만 빈부귀천, 시대에 따라 옷감의 차이, 색상의 차이가 조금씩 있었다. 특히 신랑 관복의 받침옷으로 도포와 두루마기의 중간 형태인 행의를 착용하기도 하였고 신부가 원삼을 구하지 못했을 때는 혼수감의 청홍색 천으로 원삼의 흉내를 낸 비슷한 대용품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예복과 가마 등은 마을 단위로 장만했다가 무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혼례준비의 과정에 의양(衣樣)이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신랑의 한복치수를 적어 보내는 것으로 신랑집에서 사용하는 침척(針尺)의 본을 만들어 동봉하였다. 신부집에서는 이를 가지고 신랑의 의양에 따라 옷을 지었다.

      경남의 여성 의복 풍습 중 특이한 것은 진주지역의 여성이 치마를 입을 때 끄트머리의 말을 오른쪽으로 감는 다는 것이다. 이는 서울지역이 등을 왼쪽으로 감는 것과는 반대다. 이는 오른손을 경망스럽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진주지역에서는 여성이 오른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하며 공손한 태도를 위한 의습이라 하겠다.

      상례(喪禮)에서는 삼베로 지은 상복과 건을 쓰고 짚신을 신었다. 상주의 복색은 거친 무명베로 상복을 만들어 입고 그 위에 삼베로 만든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 중단을 입으며, 삼베 행전을 바지 정강이에 감아 맸다. 허리에는 삼베로 만든 요질을 띠고 머리에는 두건이나 굴건을 썼으며 짚과 삼으로 만든 수질을 둘렀다. 그 밖에 지팡이 형태의 상장(喪杖)을 짚고 짚신을 신었다. 여성 역시 머리에는 흰 베를 덮고 수질을 썼으며 흰 댕기를 드렸다.

      2) 경남의 민속예능과 의복

      가락오광대의 의복은 장삼, 가사, 두루마기, 고깔, 평복, 패랭이, 도포, 복건, 벙거지, 동저고리, 몽당치마, 큰머리, 저고리, 치마 등을 입고 등장해 인물의 지위나 성격, 특색을 설명하고 있다.

      남해의 화전농악대의 의복에서는 색이 시각적 화려함을 덧보이게 했다. 삼국사기에 신라 진흥왕 12년(551)년부터 불교의식인 팔관회 의식 행사 때 화려한 5채색을 걸쳤다는 기록이 있다. 5색은 5방위를 말하는 색이다. 청(東), 홍(南), 황(中央), 백(西), 흑(北) 등을 뜻한다. 이 중 삼색인 유채색 청, 홍, 황색은 무속음악이나 민속놀이에서 장식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나팔수는 흰 바지저고리에 조끼, 고깔, 3색 띠, 꽹과리잡이는 흰 바지 저고리에 검정 조끼, 소매에 색동을 단다. 머리에 전립을 쓰고 전립위에 나무로 깍아 만든 징자를 달고 징자 위에 실과 철사로 연결된 적자(구슬)를 단다.

      진주와 통영의 검무는 다른 지역의 검무(검기무)에 비해 잘 전승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물론 궁중여악(宮中女樂)의 한가지로 지방 교방청에 파급된 일부 속화된 양식이 들어있기는 해도 교방의 기녀는 기예, 무예, 검무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주요 의복은 전립에 전복이다. 전복의 옆이 완전 트여있고 전대를 둘러 고정하여 입었다. 전복은 좁은 소매 위에 입는 소매 없는 웃옷으로 형태는 소매, 무, 앞섶, 고름이 없으며 매우 역동적인 모습이다.

      ●  참고문헌  ●

      경상대학교 국어문화원(2010), 진주 지역의 의생활, 경상대학교출판사
      남미화(2003), 조선후기 기록화에 나타난 검기무 복식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정복남(2000), 서부경남지방의 전통혼례에 관한 민속학적 연구 : 1920-1950년대를 중심으로」, 복식문화연구, 29, 871-886.
      韓國文化院聯合會(1993), 慶南民俗資料集

       

      한국섬유 페이스북 한국섬유 트위터

    2014-01-28 00:00:00

    편집부기자 ktnews@ktnews.com

    Copyright ⓒ 한국섬유신문사 (www.k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